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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성지탐방


공자성지탐방 프로그램 취지

    • 1910년 한일 병합조약에 의해 조선이 패망하면서 500년 통치이념인 유교(儒敎)는 타도의 대상이었고, 대신 서구의 과학ㆍ기술ㆍ제도ㆍ종교ㆍ가치관은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 이후 1980년대까지 유교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부정적이거나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고,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충효'가 강조되면서 비판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독립한 지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면서, 유교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었습니다.
    • '종교'로서 유교의 위상은 높지 않지만, 동아시아에서 유교적 전통이 가장 강하게 전승되어, 우리의 가치관과 정서에는 유교가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 본 프로그램은 중국 산동성(山東省) 일대의 공자ㆍ맹자 유적지 답사를 통해 유교 자본주의에서 미래 한국 경제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모색하고, 유교의 정치사상에서 민주주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서구의 개인주의ㆍ물질 만능주의 등 근대 사상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든 인문ㆍ교양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 안내

기 간장 소신청/접수비 용
4박 5일중국 산동성수시모집문의 (02-6214-2498)

일정

  • 제남
    • 조식

    '샘의 도시, 천성(泉城)' 제남의 상징으로 72개의 샘이 모여 형성된 자연 호수로 이백과 두보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와 글을 남긴[대명호(大明湖) 유람]

    공자와 맹자로부터 도덕정치의 이상을 이룬 성자(聖者)로 추앙 받는 순(舜)임금이 농사를 짓던 순경산(舜耕山)으로, 주(周)나라 때까지 역산(歷山)으로 불리다가 수(隨)나라 때 천불사(千佛寺)가 창건되면서 이름이 바뀌어 명명된 [천불산(千佛山)-편도 케이블카]

    · 유교경전 오경(五經)의 하나로 중국 상고시대의 정치기록인 서경(書經)의 순전(舜典)
    · 남방을 순행하던 중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죽은 순임금과 그 소식을 듣고 상수(湘水)에 투신해 죽은 요(堯)임금의
       딸이자 순임금의 왕비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함께 모셔져 있는 순사(舜祠)
    · 요(堯)ㆍ순(舜)ㆍ우(禹)임금을
       모시는 삼성전(三聖殿)
    · '문(文)의 재신(財神)'으로 추앙받는 비간(比干)을 모시는 대재신(大財神)
    · '학문의 신' 문창제군(文昌帝君)과 '무(武)의 재신(財神)' 관우(關羽)를 모시는 문창각(文昌閣)
    제남 탐방
    • 공항으로 이동 (40Km, 45분 소요)
    • 제남-인천으로 이동 (약 1시간 40분 소요)
    인천
    • 인천 도착
  • 태안
    • 조식
    • 태산(泰山)으로 이동 (18Km, 30분 소요)
    태산
    오악(五岳)의 으뜸, 동악(東岳) 태산(泰山)

    泰山雖高是亦山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登登不已有何難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은
    世人不肯勞身力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不可攀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 1517~1584년)의 시조 <태산가(泰山歌)>로 유명한 '오악의 으뜸'으로 불리는 태산은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겨온 명산으로 역대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封禪)의식을 거행했던 곳입니다. BC 219년 진나라 시황제(始皇帝)를 시작으로 한나라 무제(武帝)를 비롯한 수많은 황제들이 태산을 찾았고, 특히 한나라 무제는 5번, 청나라 건륭제는 11번이나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태산을 한 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지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고 태산 등정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아 산 정상까지 7,412개의 돌계단은 발길에 닳고 닳아 반질반질합니다. 신성한 태산에는 대묘(垈廟)를 비롯하여 각종 종교사원과 사당, 누각들이 들어섰고, 산 중턱에는 진시황이 태산을 오르다 폭풍우를 피했던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 만든 오송정(五松亭)이 있습니다.

    오악의 으뜸으로 꼽히는 [태산(泰山) 등정-왕복 케이블카]

    도화곡 → 순환버스 → 도화원(桃花源) 케이블카 → 남천문(南天門) → 천가(天街) → 백운정(白雲亭) → 중승(中升) → 벽하사 → 무자비(無字碑) → 옥황봉(玉皇峰) → 공자묘(孔子廟) → 중승(中升) → 백운정(白雲亭) → 천가(天街) → 남천문(南天門) → 도화원(桃花源) 케이블카 → 순환버스 → 도화곡
    • 중식
    • '산동성(山東省) 성도(省都)' 제남(濟南)으로 이동 (71Km, 1시간 30분 소요)
    제남

    산동성에서 발굴된 불교, 유교, 도자기, 갑골문자 등 21만여 점의 다양한 문물을 전시하는 [산동성 박물관(山東省博物館)]

    명나라 때 조성된 제남의 전통거리로 30여 개의 샘이 있는 [부용가(芙蓉街)]

    제남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화려한 분수쇼가 펼쳐지는 [천성광장(泉城廣場)]

    태산, 제남 탐방
    • 4일차 일정 종료
  • 곡부
    • 조식

    공자 사후 1년 뒤인 BC 478년 노나라의 애공(哀公)이 세운 2,500년 역사의 세계 최대의 사당으로 공자의 위패와 신주를 모시고 있는[공묘(孔廟)]

    처음 3칸의 방으로 시작된 공묘는 역대 황제들에 의해 증축을 거듭하면서 면적 10만㎡의 세계 최대의 사당이 되었습니다. 남북 1Km 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공묘는 영성문을 시작으로 12개의 문이 이어지며, 북경(北京) 자금성(紫禁城)의 태화전(太和殿)과 태안(泰安) 대묘(岱廟)의 천황전(天皇殿)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의 하나로 불리는 공묘의 대성전(大成殿)은 1018년 처음 창건된 이래 증축을 거듭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명나라 홍치제(洪治帝) 때 증축을 시작하여 1724년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때 완성된 것으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궁전급 건축물입니다.

    면적 16만㎡에 건물 152채, 463개의 객방으로 구성된 공자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공부(孔府)]

    공자를 비롯한 10만이 넘는 공자 후손들의 묘지 [공림(孔林)-전동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가족묘지로 알려진 면적 200만㎡의 공림에는 역대 왕조의 황제들이 세운 것을 비롯하여 3,600여 개의 비석이 있고 황제들이 참배할 때 머물던 정자들이 있습니다. 손자, 아들 다음으로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공자의 묘 옆에 외롭게 묘를 지키고 있는 집은 공자가 생전에 아끼던 제자 자공(子貢)이 6년 동안 묘지기를 하며 스승을 모셨던 곳입니다.
    • 중식

    주(周)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대봉건제를 실시하여 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하고 예악과 법도를 제정하는 등 고대 중국의 정치ㆍ사상ㆍ문화 등 다방면에 공헌하여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로 유교학자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받는 주공의 사당 [주공묘(周公廟)]

    • 태안(泰安)으로 이동 (80Km, 1시간 15분 소요)
    태안

    역대 황제들이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봉선(封禪) 의식과 태산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북경 자금성의 태화전과 곡부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의 하나인 천황전(天皇殿)이 있는 [대묘(岱廟)]

    태산전(泰山殿), 동악묘(東岳廟), 하묘(下廟)로도 불리는 대묘는 옛 태안성(泰安城) 면적의 1/4을 차지하였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로, 문헌에 따르면 진(秦)나라 때 이곳에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던 '치(제사터 치)'라고 불리던 건축물이 있었으며, 당시 재상을 지낸 이사(李斯)가 전서(篆書)로 쓴 '태산각석비(泰山刻石碑)'를 비롯하여 157점의 진귀한 비석들이 있습니다.
    태안 탐방
    • 석식
    • 3일차 일정 종료
  • 곡부
    • 조식
    • 니산(尼山)으로 이동 (40Km, 45분 소요)
    대성지성(大成至聖) 공자(孔子, BC 551~BC 479년)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鄒邑-현재 산동성 곡부 남동쪽 尼山)에서 출생한 공자는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입니다. 어린 시절을 외갓집이 있는 곡부에서 보내며 제사놀이를 좋아했던 공자는 1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노나라의 관리로 근무하며 끝없이 학문을 연마했고, 주나라의 문물과 제도, 예와 악에 대해서도 묻고 배웠습니다. 55세 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며 13년 동안 72명의 군주를 만나 설득했지만 박대를 받았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에도 시달리다 68세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힘을 바탕으로 먹고 먹히는 춘추시대에 공자가 내세운 인(仁)의 철학은 설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저술에 힘쓰고 제자를 가르쳤으나 사랑하던 제자 안회(顔回)와 자로(子路)가 죽자, 이를 애통해 하다 5년 만인 BC 479년 73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 하였습니다. 인(仁)에 대한 공자의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인(仁)'이라는 것입니다. 그 수양을 위해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孝悌)의 실천을 가르치고, 이를 인(仁)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공자는 인(仁)을 단지 도덕규범이 아닌 사회질서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정치사상으로 여겼습니다.

    '공자(孔子) 탄생지' 니산(尼山)의 [니산서원(尼山書院), 부자동(夫子洞)]

    니산
    • 곡부(曲阜)로 이동 (40Km, 45분 소요)
    곡부
    • 중식
    • 맹모림(孟母林)으로 이동 (12Km, 20분 소요)
    아성(亞聖) 맹자(孟子, BC 372~BC 289년)

    공자의 뒤를 이은 위대한 사상가로 이름은 맹가(孟軻)이며,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하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운 맹자는 어릴 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유명한 현모(賢母)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맹자는 공자의 인(仁) 사상에 사회적 정의를 뜻하는 의(義)를 더해야 한다고 주창한 위대한 사상가였으나, 공자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데 반해, 공자의 다음 위치에 머무르는 제2인자로 아성(亞聖)으로 불립니다.

    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명인 맹자도 BC 320년 경부터 약 15년간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습니다. 당시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이는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맹자>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입니다. 주자학(朱子學) 이후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하나로 유교의 주요한 경전으로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문장은 변론조이며 예로부터 명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공동묘지, 시장, 서당 부근으로 세 번 집을 옮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故事)로 유명한 맹모가 잠들어 있는[맹모림(孟母林)]

    • "맹자(孟子) 탄생지" 추성(鄒城)으로 이동 (12Km, 20분 소요)
    추성

    맹자의 위패와 신주를 모시는 사당으로 아성묘(亞聖廟)로 불리는 [맹묘(孟廟)]

    송나라 때인 1037년 공자의 45대손 공도보(孔道輔)가 사기산(四基山) 남쪽에 있던 맹자의 무덤 옆에 맹묘를 지었는데, 제사를 지내러 다니기가 불편하여 1121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면적 5만㎡에 정원 5개의 오중원락(五重院落) 구조에 64개의 객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면적 22,400㎡에 7개의 원락(院落)과 148칸의 객방으로 구성된 맹자와 맹자 후손들이 거주하는 가옥으로 아성부(亞聖俯)로 불리는[맹부(孟府)]

    맹부의 중심 건물로 공적인 업무를 보던 대당(大堂)의 양쪽에 있는 행랑은 맹부의 살림을 관리하던 관리가 살던 곳이고, 뒤에 있는 사합원(四合院)은 실제로 맹자가 살던 곳입니다.
    • 맹림(孟林)으로 이동 (16Km, 30분 소요)

    맹자와 맹자 후손들의 묘지로 아성림(亞聖林)으로 불리는 [맹림(孟林)]

    • 곡부(曲阜)로 이동 (22Km, 40분 소요)
    추성 탐방
    곡부
    • 석식
    • 2일차 일정 종료

  • 인천
    • 인천 - 제남으로 이동 (약 1시간 55분 소요)
    • 중식 (기내식)
    제남
    • 곡부(曲阜)로 이동 (185Km, 2시간 30분 소요)
    공자께서 말씀하신 사람을 알아보는 아홉가지 지혜

    무릇 사람의 마음은 험허기가 산천보다 더하고, 마음속을 꽤뚫어 보기가 하늘보다 어려운 것이다.
    하늘에는 그래도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의 사계절과 아침ㆍ저녁의 구별이 있지만, 사람은 꾸미는 얼굴과 깊은 감정때문에 알기가 어렵다.

    외모는 진실한 듯하면서도 마음은 교활한 사람이 있고,
    겉은 어려운 듯하면서도 속은 못된 사람이 있으며,
    겉은 원만한 듯하면서도 속은 강직한 사람이 있고,
    겉은 건실한 듯하면서도 속은 나태한 사람이 있으며,
    겉은 너그러운 듯하면서도 속은 조급한 사람이 있다.
    또한, 의로 나아가기를 목말라 하는 사람은 의를 버리기도 뜨거운 불을 피하듯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을 쓸 때에
    첫째, 먼 곳에 심부름을 시켜 그 충성을 보고,
    둘째, 가까이 두고 써서 그 공경을 보며,
    셋째, 번거로운 일을 시켜 그 재능을 보고,
    넷째, 뜻밖의 질문을 던져 그 지혜를 보며,
    다섯째, 급한 약속을 하여 그 신용을 보고,
    여섯째, 재물을 맡겨 그 어짐을 보며,
    일곱째, 위급한 일을 알리어 그 절개를 보고,
    여덟째, 술에 취하게 하여 그 절도를 보며,
    아홉째, 남녀를 섞여 있게 하여 그 이성에 대한 자세를 보는 것이니,
    이 아홉가지 결과를 종합해서 놓고 보면 사람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곡부
    • 석식
    • 1일차 일정 종료

탐방 문의

  • 한국공자학당 (Tel : 02-6214-2498)